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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앤드 레코딩 매거진 - 2008년 9월호 닌 인터뷰

by Shinichi Yano 2008. 9. 15.

※ 유의사항
- 잡지 원문 직찍 제공해 주신 분 : 나는나다 님 (
http://blog.naver.com/12powerhk)

- 발로 중역(트렌트 인터뷰 원문은 뉴욕 타임즈 기사를 일본 잡지사에서 번역했고, 저는 그 일본어 기사를 번역했습니다)했습니다.


- 직역에 가깝습니다. 지명, 전문 용어 부분도 직역입니다. 가타카나로 된 세션, 스탭 분들 이름은, 제가 이름을 모르는 분은 원어 그대로 옮겨 적은 게 많습니다. 영어 발음이 어색해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오자 및 오역 지적도 환영합니다.

- 중간 중간의 (☆)부분은 제가 읽을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나는나다 님께서 학교 도서관에 스캐너가 없으셔서 원본을 스캔은 못 해 주시고 무려 니콘 D200으로 원문을 찍어서 보내주셨는데, (☆)부분은 글씨가 부옇게 번져서 읽을 수 없어서 빼고 적었습니다. 딱히 그 부분이 빠져서 글의 큰 흐름에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제외하고 올립니다.

- 잡지 인터뷰 사진은 잡지 표지조차도 
전부 닌 오피셜 플리커 사진(http://www.flickr.com/photos/nineinchnails/)이라 원래 플리커 계정에 올려져 있던 사진으로 가져 왔습니다.

사운드 앤드 레코딩 매거진
2008년 9월호 (2008년 8월 12일 발행)

24Bit/96kHz 파일을 프리 다운로드!
음악업계를 뒤흔든 문제작 “The Slip”의 진실


35p.


"CD가 팔리지 않아", "그건 간단하게 파일을 복사할 수 있으니까.", "아니, 매력적인 음악이 줄고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라이브에 오는 관객들의 숫자는 늘고 있어." ...잘 팔리는 CD의 공식이 무너져 가며, 음악 업계에서 해답이 없는 회화가 당연한 듯 반복된 것도 몇 년쯤 지났다. 저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모색하길 계속하고 있지만, 해결 방법이 되는 것은 아직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혼미가 극한에 다다른 음악 시장에 대항한 가장 쇼킹했던 사건이, "리스너가 자유롭게 가격을 흥정하는 것"이었다. 일부 보도에서는 발매 첫날에만 12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고 전하며, 또, 동일한 앨범의 박스 세트도 엄청난 판매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는, 메이저 레이블에 의한 프로모션,유통망의 옳고 그름을 묻는 논쟁까지 가져왔다.

라디오헤드의 신작 발매에서 약 반 년이 지난 2008년 5월 5일, 드디어 강렬한 사건이 일어났다. 메이저 레이블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트렌트 레즈너의 프로젝트 = 나인 인치 네일스가, 일곱 번째가 되는 신작 "The Slip"을 통째로 프리 다운로드라는 형태로 발표한 것이다. 게다가 라디오헤드의 다운로드 포맷이 160kbps의 MP3 파일이었던 것에 반해, "The Slip"은 고음질과 MP3(VBR / 가변 Bit Rate 방식)에서 최대 24 Bit / 96 kHz WAV까지의 파일 포맷까지 준비했다.

물론 모두 무상으로 말이다. "라디오헤드의 프리 다운로드는 음질이 안 좋은 정규 씨디 구입을 위한 프로모션"이라는 견해를 두드러지게 한다는 레즈너스러운 과감한 결단이 있었기에, 그 결과, 다음 페이지에 있는 인터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발매를 시작한 5월에만 이미 백 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씨디 매출 매수로 치환해 보면, 이것은 경이적인 숫자다.

그렇지만 다운로드 수를 늘려도 무료니까 이익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시도로 레즈너가 의도했던 것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불황이라 말해지는 음악 업계에 해결책을 주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고도로 산업화된 현재에 대한 반항일까.




36p.

나인 인치 네일스
텍스트 (☆) (c) 뉴욕 타임즈 / 번역 : 토모히로 모리야 / 사진: 닌 플리커

< 내 음악을 듣길 바랄 뿐이야. 모든 것은 바로 거기에 있어. 가지고 있어 줘. >

신작 "The Slip"으로 인해, "인더스트리얼 록의 혁명아(革命兒)"라는 별명과 "고품질 프리 다운로드의 선구자"라는 명함이 붙은 레즈너. 사실은 "The Slip"에 앞서서, 그는 올해 3월에 여섯 번째 앨범 "Ghosts Ⅰ-Ⅳ"를 오피셜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또 다시 신곡이 불시에 업로드되었고, 수 년 전부터 스스로 악곡 소재를 무상 제공하며 아마추어 아티스트들에게 리믹스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었다. 요컨대, 일석이조로 "The Slip"의 무료 배포에 도달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레즈너의 실험에 숨겨진 의도에 대해 물어 보았다.

< 남에게 컨트롤을 당할 정도라면, 나는 죽는 편이 낫다. >

레즈너의 저택은 로스앤젤레스 비버리힐즈의 언덕 위, 차의 GPS가 미쳐버릴 것 같이 얽힌 산길을 지나가는 곳에 있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급격한 낭떠러지가 있는 연못가에 높이 솟아, 안개가 자욱하게 둘러싸인 마을을 내려다 보면, 큰 파노라마가 눈앞에 넓게 펼쳐진다.

당초에는 부엌만 개축할 예정이었다고 하는데, 집 전반적으로 공사가 커져서, 현재 레즈너는 여기서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아직 손대지 않고 보존하고 있는 방이 있다. 레즈너가 나인 인치 네일스로서 그를 초심으로 돌려보내는, 올해 두 장의 앨범을 녹음했던 스튜디오이다. 그 2장에는 반주곡(Instrumental) 작품인 "GhostsⅠ-Ⅳ", 그리고 이번에 고른 나인 인치 네일스의 최신작 "The Slip"이, 오피셜 웹 사이트 닌 닷컴에서 5월 5일에 프리 다운로드라는 형태로 발매되었다. "이것은 모두 나의 생각이었다."라고 레즈너는 오피셜 웹사이트 상에서 발표했다.

37p.

5월이 끝나가려 할 즈음에, "The Slip"은 100만 회를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다고 레즈너는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나인 인치 네일스가 7월 25일에 캐나다 밴쿠버에서 개시했던 투어에 맞춰(본 인터뷰는 2008년 5월에 감행했다), CD 패키지 앨범도 얼마 후에 발매했다.

"100만 명의 사람들이 우리들의 앨범을 애플 아이팟에 넣고 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만약 돈을 내고 들어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굉장한 거다. 그렇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들려 주고 싶었다. 이해하겠나? 모두의 머리를 냅다 날려주고 싶었다."

그는 메이저 레이블에서 이탈한 슈퍼스타 중 한 사람이다. 수많은 청중을 열광시킬 수 있는 라디오헤드, 마돈나, 그리고 이글스와 같은 굉장한 브랜드가 된 스타들은, 이미 레이블에 의한 스타 탄생의 준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스템보다는 차라리 외부 세계로 활로를 찾아내는, 선택지 이외에도 어느 정도 다른 선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즈너는 인터스코브 레코즈에서의 계약을 끝낸 후, 늘 자신의 음악을 발매하는 타이밍의 적당한 때를 가늠했다. "다시 누군가에게 허가를 구할 필요는 없어." ...현재의 상황은 그의 천성과 비즈니즈 세일즈에 부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나인 인치 네일스의 셀 수 없을 정도의 공연에서 클라이맥스 때 흐르던 "Head Like a Hole"에서, 그는 "I'd rather die than give your control(너에게 조종당하느니 나는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노래해 왔다.

< 여태까지도 파일을 공개해 왔다. 뭐가 나쁘다고 했는가? >

"워커홀릭", "기술 오타쿠"라는 많은 별명이 붙었으며, 디지털 세대를 대표하는 한 뮤지션이 되었다. 그의 노래는 우리들의 욕구 불만과 화를 대변하며, 자기 혐오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들을 팝한 멜로디와 불온한 마음으로 깊게 찌르는 노이즈를 절묘한 밸런스로 조합해, 사춘기의 젊은이들의 찬송가로서 지금까지 몇 세대에 걸쳐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즈너는 인터뷰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다. "공포는 의식한 순간에 나의 인생을 지배해 버린다. 나는 어떻게 이것을 인터뷰에서 대답해야 할지 항상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에게 역시 결함이 있다는 거다. 그런 게 없으면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나에게 말할 찬스가 주어진 것이라면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The Slip"의 속에서, "자기 자신은 보기 어려운 다른 것만 말하는 건 아닌가?"하고 자문하고 있다. 이 앨범에서 용서할 수 없는 음을 되풀이하고 있음에, 디스토션(distortion)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은 헤비 록부터 클럽 비트를 피쳐링한 댄스곡, 그리고 피아노 발라드까지 피로하며, 밴드의 잃어버렸던 훌륭한 과거를 되찾았다. 묵사발을 만드는 것 같은 드럼과 뒤따르는 기타가 있어서, 젊은이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사운드 속에서 현재의 자기 자신이 선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Start it up again like it matters anymore/I don't know if it does(이런 모습으로 다시 시작하는 건 별로일지도 모르지만/만약 그렇다고 해도 나는 상관없다)"고 "The Slip"수록곡인 "1,000,000"에서 토로하고 있다. 레즈너가 말하기를, "나인 인치 네일스는 공격성, 성실함, 노골적인 모습, 분노, 그리고 추함, 그것들 자체이다. 내가 아는 한, 나는 이것들을 하고 있는 녀석일 뿐이다. 어쩌다가 문득 하고 있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 다른 거다.”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헤비 리스너이기도 한 레즈너는, 창조자로서 앨범 제작에 매우 헌신적이다. 오래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로커이며 동시에 독특한 맛의 사려 깊음을 겸한 스타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디지털 세대의 선택된 사람으로 발전시켰다. 이글스와 라디오헤드와는 다르게, 그는 앨범을 제작하는데 긴 나날이 걸리지 않으면서도, 어떤 욕심을 발표했다. 젊은 날의 레즈너는, 뮤지션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앨범 제작을 "소설"의 집필처럼 파악하고 있었지만, 오늘 날의 젊은 리스너들은 무료로 음악을 다운로드하여 아이팟으로 재생을 하고, 음악을 "잡지"처럼 다루고 있다고 파악한 것이다.

레즈너는 자신의 음악을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배포해, 앨범을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전세계 속의 컴퓨터로 송출했다. 그는 파일 공유 사이트와 음악 블로그에 정통하고 있어서, 나인 인치 네일스를 공격하는 글도 물론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앨범에 수록된 수록곡들의 멀티 트랙 데이터조차도, 리믹스를 목적으로 하는 리스너들을 위해 온라인에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알만한 것을 해 왔다. 뭔가 나빠진 게 있나?"라고 그는 말했다.

< 간신히 통제에서 해방되었다.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GhostsⅠ-Ⅳ"의 아이디어는 2007년의 투어 이후에 생겨서, "특별히 아무 것도, 미래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라는 말대로 녹음을 했다. 그리고 3월에 앨범을 여러 형태로 발매했다. 그것들은 5달러의 다운로드 버전, 표준의 CD와 LP, CD/DVD/LP/아트워크가 세트로 된 300달러의 호화스런



38p.

리미티드 보너스 에디션(한정 2,500장 세트는 즉시 완매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75만 달러의 매출을 달성했다. 게다가, 그 세트는 2008년 현재 500달러 정도 가격이 붙어, 이베이에서 거래되고 있다)으로 판매되었다.

38p. 사진 설명 : 레즈너의 스튜디오의 한 귀퉁이. Doepfe R A-100, Vermona Perfourmer, Analogue Systems RS Intergrator Systems, Analogue Solutions Vostok등이 치솟아 서있는 모듈러 신시사이저의 컬렉션이 압권. 시퀀서인 Doepfer Schaltwerk, 바로 앞의 책상 정면에는 CV/Gate 키보드의 Analogue Systems French Connection, 그 오른쪽에는 Moog Minimoog Voyager, 그 앞의 선반에는 Roland SP-404와 Line6DL4도 보인다. 덧붙여 아래에 있는 기타의 음 조절을 익히고 있는 사람들은 애티커스 로스와 알렉산드로 코티니이다.

그리고 "The Slip"은 1개월의 작곡 기한 이후에 3주 동안이라는 경이적인 스피드의 스튜디오 작업으로 우리들에게 닿았다. 세션들과의 작업 중에 그는 "discipline"이라는 첫 트랙을 라디오 방송국에 배포해, 온에어 리스트 Top 10으로 멋지게 보냈다. 그들은 새로운 작품에 대해, 1999년 발표 앨범 "The Fragile" 이상으로 리스너들의 반향이 있어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사운드는 고심해서 고쳐졌고,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더욱 중독적인 작업으로 시간을 쏟아 여유있게 작업하고 싶다고 말한다. "The Slip"은 녹음을 끝내고 난 5일 동안 믹싱, 마스터링, 그리고 그래픽스를 맡았기 때문일까. 어쨌든 레코딩을 돌이켜 생각하면, 그는 "매우 즐거웠다. 이정도로 지금까지 작업했던 적은 없었을 거다."라고 말했다.
레즈너는 라디오헤드처럼 밴드로 가니까, 전통을 따르지 않고 온라인에서 자유로운 가격 설정 작업을 통해, 메이저 레이블의 시스템 외의 유통 방법을 현재 시험하기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GhostsⅠ-Ⅳ"와 "The Slip" 앨범을 온라인으로 발매할 때, 레즈너는 디지털 파일을 입수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는, 전용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그것에 대해서도 가까운 시일 내에 무료로 입수 가능하게 할 거라고 말했다. "우리들은 적합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 예산을 쏟고 있다. 기다려 달라."고 레즈너는 말했다.

메이저 레이블에서 독립한 것에 관해서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러가지로 무서운 게 있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가까스로 통제에서 자유를 찾았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까?하고 자력으로 생각하는 것을 겨우 할 수 있게 되었다."

< 지금의 아티스트는 음악뿐만 아니라  티셔츠도 팔아야만 한다. >

나인 인치 네일스의 최신 사운드는 흥분되고 거친 인상을 주지만, 사실은 리핑 사이즈로서는 쾌적한 스튜디오에서 태어났다. 짙은 붉은 색의 커튼에는 붉은 벨벳 장식이 나부끼며, 합판을 깔아 틀어막은 벽은 고딕스러운 취향과 함께 최적의 방음효과를 만들어 낸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가 방의 양쪽 구석에 배치되어, 그 사이에 기타 선반이 쌓여있다.

레즈너가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어서, 레코딩에 드는 비용은 엔지니어와 극히 소수의 뮤지션만, 독립해서 작업하고 있기에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자유로운 몸이며, 이제부터 새로운 한 걸음을 밟아 나갈 레즈너의 발신묘지(發信墓地)이다.

"그라운드 제로에 어서 오세요."라며 방문자에게 소개한다. 레즈너는 레코딩 뮤지션으로서의 경력을 지금까지 약간 길게 늘려 가기 위한 약간의 연장을 위한 기술을 아예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기술을 습득하려고 조차도 하지 않으며, 리스너들이 무료로 음악을 당연하게 손에 넣게 하는 것 외에는,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모든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드시 무료여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실제는 무료로 정해져, 어떤 사람이 이것을 구할까, 실천은 하지 않고 이론만 앞서게 되는 사람이 되는 건 거절할 수밖에 없다."

레즈너는 자기 자신의 음악을 마케팅 도구로서 다루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있다. "이젠 좋은 음악을 만들기만 하면 충분하지 않고, 티셔츠를 팔거나, 때로는 매춘부처럼 흔들면서 춤추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제 운전수에게 내맡긴 쾌적한 버스에 탈 뿐만 아니라, 레코딩을 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무엇이든 상업적 취재를 받아들이는 것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만약 오늘과 같은 상황이라도, 가능하다면 일련의 과정을 두어 프라이드와 위엄 정도는 지키고 싶다."

< 프로덕션에 공을 들이면 나의 지갑은 돈이 남아나질 않는다. >

나인 인치 네일스는 1990년부터 몇 백만 장의 앨범을 팔아온 밴드이며, 몇 백만 명의 충실한 젊은이들을 만들어내, 투어를 돌면 항상 아레나 클래스를 전석 매진으로 만들었다.


39p.
작년에 레즈너는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띠는 힙합계 아티스트, 소울 윌리엄스의 앨범을 자금이나 음악 제작 쪽 양면으로 프로듀스해 "The Inevitable Rise And Liberation Of Niggy Tardust" 앨범을 발표했다. 당초, 이 작품의 릴리즈를 레코딩 회사가 거절했기 때문에, 인터넷 상에서 선착순 10만 명에게 MP3 파일을 프리 다운로드, 또는 5달러로 높은 퀼리티를 가진 파일을 판매했다. 레즈너는 "팬이라면 뮤지션을 지지하기 위해 기쁘게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고 꾀하고 있었으나, 현실적으로는 약 20%가 그렇게 했을 뿐이다. "조금 내가 순진한 게 지나쳤던 걸까?"라고 회상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초에는 실패했다고 느꼈지만, 명확히 실태를 고찰해, 대답은 조금 바뀌었다고 한다. "이 레코드에 대해 지불했던 사람들의 수는, 사실은 그의 그전의 앨범에 대해서 지불했던 사람의 숫자보다도 많았다. 결과적으로는 약간은 돈을 벌었다는 거다. 그리고 그의 네임 밸류는 10배로 뛰어 오르지 않았나. 하루 동안의 배포로 전작보다도 7배 가까운 사람들이 그의 앨범을 손에 넣었다. 이 결과를 보고도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현재의 레즈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다른 쪽 방면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 5월 중순부터 시작한 라이브 투어의 리허설뿐만 아니라, 스테이지 프로덕션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풀 밴드에 의한 최초의 리허설 전에, 캘리포니아 주 버밴에서 레즈너는 모먼트 팩토리(Moment Factory, 몬트리오에서 손꼽히는 하이테크한 프로덕션 회사)와 수 시간에 달하는 전화 회화에 참가했다.

레즈너의 테크놀로지의 집착은 예산이라는 벽에 번번이 직면하고 있다. "프로덕션에 아까워하지 않고 돈을 써 버리면, 내 지갑은 겨우 이 정도의 돈도 남아 있지 않을 거다. 하지만 쇼를 할 때마다 손해보는 일은 할 수 없으니까 어디까지나 제한을 두고 있다."

거기에는, 레즈너에게 영향을 계속 주고 있는 그래픽 아티스트인 롭 셰리던을 사귀면서, 모먼트 팩토리와 예정했던 세트 리스트 전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어디에 거대한 비디오 스크린을 배치할까, 또 프로그래머와 하드웨어의 메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혼돈스러운 SE에 대해 토의하는 등, 그 내용은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레즈너는 영상의 프레임을 뮤지션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전환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이것은 흡사 기타 사운드를 자유롭게 바꾸는 것 같은 것과 같은 거라고 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스테이지를 인터렉티브한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완벽히 SF의 세계로 밟아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 돈과 명성을 위한 게 아니다. 쾌감이 있기 때문에 음악을 만들길 계속하려 한다. >

나인 인치 네일스는 1900년대 중반기부터 아레나 급의 투어를 행하고 있다. 청중이 성장하며 쫓았던 레즈너 자신도 성장해 갔고, 그것은 자기 파괴의 방향으로도 나아가고 있었다... 알콜과 헤로인의 의존이다. 1997년에 재활을 거쳐 부활을 이룬 속박의 시간, "The Fragile" 앨범을 2년을 쏟아 제작하며 피폐해져 갔다. "이 "The Fragile"은 나를 끝나게 해 버렸다."고 말했다.
"The Fragile" 투어 이후 5년 간, 레즈너는 침묵하며 숨죽였다. 그가 말하기를 2001년 이래, 술에도 마약에도 손을 대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있었지만, 2005년의 "With Teeth"까지 새 앨범 발매는 없었다. 중독에서 벗어난 상태에서는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은 없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마침내 힘의 쇠약함에도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나이를 먹었다. 다시 젊음과 열정만으로 속이길 계속할 순 없다."

레즈너를 둘러싼 거센 바람은 드디어 휘몰아치며, 그의 최초의 매니저와의 소송 문제가 터져 나오게 했다. 레즈너가 아직 젊어서 무지했을 때 교환한 "나인 인치 네일스의 수익 20%를 그에게 제공한다."는 비상식적인 계약을 둘러싼 소송이었다. 2005년, 부당한 착취와 정신적 고통을 받아서, 판사는 본래 매니저 측에게 285만 달러의 지불을 명령했다. "With Teeth"는 레즈너가 "새로운 사운드"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신에게 있어서의 새로운 시작이 될 뿐만 아니라,  매출이 떨어져 가는 현재의 음악계임에도 불구하고, 50만 장의 세일즈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엔 자기 자신도 과히 움직인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매우 기분이 좋으니까. 나는 가족이 있지도 않고, 교제를 함에 있어서 어떤 것을 해야 그렇게 좋은 기분이 드는 지 잘 모른다. 아직 뾰족뾰족함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하지만 일하면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운 게, 어딘지 모르게 뭔가 생겨나는 기분이 드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한다. 돈과 명성을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중독감과도 같아서, 한 번 쾌감을 맛보면 누구나 다 그 배로 일을 하려고 할 거다. 이해하겠나? 이러니까 나는 빛날 수 있다." ...그렇게 말하고 웃으면서 레즈너는 떠났다.

39p. 사진 설명 : 레즈너의 스튜디오에서, 악보를 보면서 디지털 피아노의 Roland RD-700을 연주하는 레즈너(중앙)과 공통 프로듀서인 애티커스 로스(왼쪽), 서포스 뮤지션인 알렉산드로 코티니(오른쪽), RD-700은 마스터 키보드로 외부 음원을 울리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게재된 사진은 2008년 올해 3월에 릴리즈된 "GhostsⅠ-Ⅳ" 때의 것이다.



40p.

Alen Moulder

< 트렌트는 하나하나의 악기의 디테일에 구애된다. 그래서 밴드는 한 번만으로는 녹음할 수 없다. >

무료 다운로드라는 면만 클로즈 업 되었지만, 종래의 인더스트리얼 노선에서 뉴 레이브의 현대적인 감각을 가한 "The Slip"의 내용도 주목할 만한 것이다. DAW 이후의 느낌이 좋은 디지털 변형과 타이트한 음의 형상 등, 음악 오타쿠이기도 한 레즈너의 센스가 응축되어 있다. 그런 같은 작품의 믹스를 직접 다뤄 나인 인치 네일스 작품에 부족하지 않은 엔지니어, 알렌 몰더. 스매싱 펌킨스의 재결성과 화제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지저스 앤 메리 체인 등, "일그러짐"이 특징인 밴드들을 맡아왔던 인물이다.

< 지금껏 만들었던 게 아닌 개러지스럽고 생생한 작품에 임했다. >

Q : "GhostsⅠ-Ⅳ" 이후 곧바로 릴리즈 되었지만, 레즈너가 이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A : 내가 합류한 6주 전이었지만, 3월 중순부터 4월 상순 정도가 아니었을까. 트렌트의 태도는 우선 데모 곡과 부르는 곡을 만들어서 그것을 스튜디오에 가지고 들어왔지만, 그 데모를 본격적으로 다시 만드는 식으로는 하지 않으면서 발전시켜 나갔다. 내가 참가하는 것은, 최초의 데모 곡이 만들어졌을 때부터다.

Q : 앨범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건가요?
A : 내가 스튜디오에 들어갔을 때는, 그가 꿈꿨던 전체적인 모습을 말해주었었지만, 이번에는 언제나 나인 인치 네일스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펑크한 것, 개러지스러운 도달에 당면한 듯 보였다. 재빨리 작업해서 생생한 사운드를 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GhostsⅠ-Ⅳ"는 그전의 단계였다. 저것도 매우 빨리 임한 앨범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 시간적 제약까지 준비한 건 이제까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다하더라도 이날 발매한다. 후퇴는 하지 않는다."고 명백히 결정해 두었다.

Q : 구체적으로 어떻게 녹음 작업이 진행되어 갔습니까?
A : 그가 가져왔던 트랙을 기반으로, 곡이 가장 좋은 상태라는 마음가짐이었다. 곡을 (☆).

Q :  리듬은 모두 연주했습니까?
A : 그렇다. 생생한 리듬을 믹스시켰을 뿐이지만.

Q : (☆) 


41p.

A : 생생한 드럼 소리 이외에는 전부 한 사람이다. 키보디스트 알렉산드로 코티니에게 연주를 부탁했던 것도 있지만, 태반은 트렌트의 손길이다. 밴드로서의 녹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지 않았다.

Q : 제법 밴드처럼 공연한 것처럼 들리는 곡도 있습니다.
A : 맞다. 그것을 노렸다. 하지만, 나인 인치 네일스로서는 밴드 녹음은 할 수 없을 거다. 트렌트는 악기 하나하나의 디테일에 구애되기 때문에, 각 파트의 사운드를 자기 자신이 반복해서 연주한다. 완성형을 향해 한 음씩 음미해간다.

Q : 베이스는 (☆)의 밖에서 전기를 넣기도 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한 건가요?
A : 맞다. Doepfer, Analogue Solutions, Metasonix...거친 사운드에는 Metasonix을 자주 사용했다.

Q : 비트에 관해서 입니다만, 리듬이 타이트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힙합의 영향도 가미되어 있기 때문인가요?
A : 확실히 약간은 있을 거다. 디케이(ディケイ)와 엔벨로프(envelope)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음의 길이"를 특히 의식했다.

< 96kHz WAV의 배포는 진보적이다. 젊은이들이 좋은 소리에 눈을 뜬다면 좋겠지만...>

Q : 역시 보컬은 최후에 녹음한 건가요?
A : 아니다. 상당히 이른 시기에 녹음했던 곡도 있다. 여러 번의 보컬 엔지니어를 시도한 것이 많지만, 8할은 최초에 녹음했던 보컬과 가사가 채용되었다. 몇 번 가사를 고쳐 녹음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이른 시기에 보컬 파트가 완성된 것이 많았다.

Q : 보컬에 임할 때는 당신이 녹음을 담당했나요?
A : 그 장소로 직접 가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녹음을 맡은 부분도 다소 있었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보컬에 Shure SM58을 사용했다. 생생한 사운드를 요구했기 때문에, 저 마이크가 그의 목소리에 어울렸다. 그래서 앨범에 수록되었던 보컬에는 별로 이펙터가 쓰이지 않았다.

Q : 프리 다운로드에서는 24Bit/96kHz WAV 파일이 공개되었습니다만, 레코딩 단계에서 96kHz로 녹음했나요?
A : 그렇다. 96kHz로 녹음했다. 그것은 우리들이 결정한 일환이었다. "GhostsⅠ-Ⅳ" 이후 얼마 안 있어서 발매했지만, 그가 돈벌이를 위해 음악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팬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리스너에게 돈을 받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서, 나도 그 아이디어에 찬성했다. 그래서 진보적인 일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96kHz로도 릴리즈한 것은 프리로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흥분되었다. 이제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에 굉장히 기뻤다. 이것이 트렌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대단함이 아닌가 싶다. 그는 매우 참신해서, 항상 보통이 아닌 것을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전진해서 도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 말이다.

Q : 샘플링 Rate에 대해서는, 중역의 밀도를 증가시키기 위해서 굳이 48kHz로 압축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A :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말이다. 실제, 나도 보통은 48kHz로 작업하고 있으니까. 96kHz로 넓혀 가면서, 그 장점은 전체적 트랙보다도 현저하게 보여진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하이퀼리티한 것을 만들었으니, 젊은이들이 고음질의 사운드에 눈을 떠 준다면 좋겠는데...(웃음).

Q : 192kHz라는, 마침내 High Rate한 상태로 녹음하는 선택지(選択肢)도 있었던 건가요?
A : 개인적으로, 192kHz 레코딩에서는 하드의 속도를 아직 따라잡질 못한다고 생각한다. 확실하게 192kHz 녹음은 할 수 있지만,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의 회전과 레코딩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나로서는, 좋은 AD 변환기로 96kHz로 녹음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96kHz로도 Lavry Enginnering의 변환기로 A/D한다면, 보통의 오디오 I/O로 192kHz로 녹음한 것보다도 괜찮게 들린다.

Q : 이번 레코딩 시스템은?
A : DIGDESIGN Pro Tools다. 편집 작업에 가장 유연성이 있어서 썼다. 그래서 가장 안정적이지 않을까. MIDI를 조종하는 것은 최적일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럭저럭 이라고 생각한다. 현 무렵에, 이 이상인 것은 없다.

< NS-10M은 오랜 친구같은 느낌이다. 어떤 것을 드리워 줄지를 알고 있다. >

Q : 믹스에 관해 당신의 스튜디오, assault 사(社) & battery에서 행했습니까?
A : 아니다. 녹음도 믹스도 트렌트의 스튜디오였다. 덧붙여 말하자면 assault & battery는 프로듀서의 프레드와 공유하고 있어서, 전날



42p.

42p. 사진 설명 :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아날로그 콘솔(console)의 SSL AWS900+을 조종하는 트렌트 레즈너. 앞쪽에서는 애티커스 로스가 DAW를 조종하며, 몰더의 부재 시 두 사람이 녹음을 진행될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 앞 쪽에는 SSL X-Rack 모듈이, 또 구석에는 ROLAND RE-201, Teletronix LA-2A, AVALON DESIGN VT737SP,NEVE 1073 등의 기재가 보인다.
 
두 곳의 스튜디오가 오픈했을 정도였다. 이름은 "assault & battery 2"이다.

Q : 프레드와는 어떤 형태로 공유하고 있나요?
A : 싸운다(웃음)! 빨리 사용하는 사람의 승리다. 보통, 프레드보다도 내 쪽이 믹싱할 일이 많기 때문에, 내가 대부분 믹싱 룸에 있다. 아무튼 빠른 사람이 임자라 각자 작업하고 싶은 사람이 스튜디오를 사용할 뿐이다.

Q : "The Slip"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서, 믹싱으로 사용했던 콘솔은 무엇인가요?
A : SSL AWS900+을 사용했다. 24ch 아날로그가 뛰어나지만 Pro Tool의 컨트롤러로 하니까, Pro Tools의 조작도 아날로그 믹스를 모드를 바꿔가며 행했다. Pro Tools로 "Drum 1", "Drum 2"가 된 스템(stem)믹스를 만들어서 아날로그를 잘 섞는 게 내 일이다.

Q : 이와 관련해, SSL은 Matrix와 Duality라는 콘솔도 나왔습니다만 흥미가 있습니까?
A : 아이디어는 멋지지만, 시험할 기회가 없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콘솔은 assault & battrey에도 있는 SL4000G Plus이다. 하지만 AWS900+도 굉장하다. 76ch의 SL4000G Plus를 사용한 후에 느낌이 매우 작은 느낌이었지만, 잘 쓰면 멋진 결과가 나온다. 그게 간혹 트렌트의 스튜디오에 있기도 했다. 완벽했다.

Q : 보통 assault & battery로 믹스하고 있는 당신에게 있어서, 레즈너의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에 기자재적인 제약이 있다면?
A : 없다. 내가 믹스로 자주 사용하는 기재는 그도 거의 가지고 있다. MANLEY Massive Passive EQ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도 구입할 정도였고, 콘프(コンプ)의 CHANDLER LIMITED TGI와 테이프, 시뮬레이터의 RUPERT NEVE DESIGNS Portico 5042도 둘 다 가지고 있다.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기재는 상당하다. 모니터 스피커도 같고, DYNAUDIO ACOUSTICS BM15A에 TANNOY의 서브 우퍼를 갖춰 두고 있다.

Q : 이번에, 당신이 이전까지 마음에 들어 한 YAMAHA NS-10M은 사용하지 않았나요?
A : 사용하지 않았다. 내 스튜디오에서 믹스하는 프로젝트에는 아직 사용하고 있지만. 트렌트도 나도 DYNAUDIO ACOUSTICS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것을 사용했다. 덧붙여 말해서 NS-10M은,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계속 사용해서 오래된 친구같은 존재이다. 무엇을 넣어야 하는 지 확실히 안다. 음량을 마음껏 올리면 매우 흥분된다. 그 역동적인 점이 좋다. 게다가 생산 종료된 것은 캐비넷이라, 드라이버와 치타(ツィーター)는 이미 손에 넣었다.

Q : 믹스 때의 이펙트는 아웃 보드와 플러그 인 중 어떤 게 많았나요?
A : 플러그 인이다. "The Slip"에서는 아웃 보드로 활약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앨범의 성질상, 대체로 보아 이펙트를 컴퓨터 안에 거는 쪽이 더 쉬웠다. 아웃 보드는 광대한 연출용으로 ROLAND RSS, 이후 디스토션 용으로 THERMIONIC CULTURE Culture Vulture를 사용했다.

Q : 이번에는 리퍼브와 딜레이를 막을 수 있었나요?
A : 그렇다. 아까도 말했지만 말이다. 개러지스러운 펑크한 느낌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보컬의 85%에는 이펙트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굳이 사용할 때는 버브 플러그 인은 DIGIDE SIGN Reverb One으로, 세련된 리퍼브를 쓰고 싶을 때는 AUDIO EASE Altiverb를 넣었다. 딜레이는 주로 SOUNDTOYS Echo boy다.

Q : 믹스 작업은 어떤 파트부터 착수했나요?
A : 곡에 따라서다. 위의 것부터 시작해서 전체의 인상을 잡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세션의 독점이 아우르는 걸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다섯 번째 곡 "Echoplex"에서는, 곡의 본편보다도 아웃트로만의 믹스 쪽에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서서히 사운드가 희미해져 가며, 다른 사운드가 앞에 나오는 것처럼 했다. 반대로, 곡의 앞부분은 상당히 스트레이트하니까 간단했다.

Q : 이와 관련하여 그 "Echoplex"는, 테이프 에코(テープ エコー)에 MAESTRO Echoplex를 사용하고 있어서 그런 타이틀이 된 건가요?
A : 아니다. 사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타이틀은 물론 트렌트가 붙였지만, 내가 작업에 들어갔을 때는 Echoplex를 사용하는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Echoplex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웃음). 타이틀의 유래는 들어본 적 있었지만, 잊어버렸다. 미안하다.

Q : 이어서 악기 파트가 많습니다만, 하모니를 정리하는 테크닉 등은 있었습니까?
A : 특별히 잘 정돈된 것 같이 주의를 기울였지만, 말할 만큼은 아니다. 이번 회는 전체적으로 클리어한 변형이 나오는 개성이 있다. 시간을 넘어서 분리감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한 것은 확실하다.

Q : 기타 파트는 어떻게 일그러지게 했습니까?


43p.

A : 트렌트가 페달 이펙터를 산더미만큼 가지고 있어서, 때에 따라 여러가지 이펙터로 일그러짐을 만들며 믹스하는 일도 있었고, 앰프 사운드의 시뮬레이터로서 1K MULTIMEDIA Amplitude로 변형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에는 AUDIO EASE Speakerphone을 사용해 거리감을 내며 일그러지게 하는 것도 괜찮거나 했다.

Q : 변형의 경향이 디지털 적이라는 게, 최근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뉴 레이브에 상통하는 현대적인 사운드라는 인상때문입니까?
A : 확실히 그렇다. 뭐 씬을 트렌트는 너무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따라 프로세싱의 일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의 소리를 약간 받아들인다면, 시대를 거스르는 것도 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의식하면 앨범이 나올 시점에 이미 시대에 뒤쳐지게 되어 버릴 수도 있고, 늦은 한 걸음을 잡아내게 되는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Q : 아홉 번째 곡 "The Four of Us are Dying"에서 스피커 외의 소리들이 배치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프로세싱하고 있는 건가요?
A : 그것은 우리들의 비밀 병기로 사용되고 있다(웃음). "The Downward Spiral" 이후의 나인 인치 네일스의 어떤 앨범을 들어 봐도, 그 요소가 들어가 있다. 내막을 공개를 하자면 ROLAND RSS다. 그것에 음을 넣으면, 매우 굉장히 와이드한 형태가 나온다. 엄청나다. 이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가르쳐 주면 안 된다(웃음).

Q : 두 믹스의 마스터에는 어떤 것을 썼습니까?
A : LAVRY의 AD 컴퓨터를 통해서, 플레이 백 하고 있는 Pro Tools에 녹음하고 있다. 그 Pro Tools에 192kHz로 녹음해 보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 재생과 같은 96kHz로 넣는 쪽이 빠르다고 판단했다.

< 리스너는 지금까지 속임을 당했던 사람 / 대항해서 공짜로 음악을 갖고 싶어 한다. >

Q : 나인 인치 네일스의 작품을 믹스할 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A : 트렌트의 경우, 믹싱은 어떤 의미로 녹음의 연장이라는 거다. 녹음이 거의 최종적이니까, 믹싱에서는 그것을 연륜을 가지고 갈 뿐이다. 요소요소에 믹싱 아이디어가 전해지면 좋다고는 생각하지만, 태반은 트렌트가 연주한 것이다.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자기 자신이 만족한 것을 만들 뿐이다. 모두의 기분이 좋아지는, 종래와는 다른 것을 하면 좋겠지만.

Q : 그런 그렇고, 이전 우리 잡지의 특집에서 너바나의 "네버마인드"를 믹스할 때 참고할만한 CD로 꼽았습니다만, 현재 마음에 드는 앨범은?
 A : 지금도 역시 "네버마인드"이다(웃음). 이후 레이지 어게인스트 머신의 첫 앨범, 마돈나의 "뮤직"...여러 타입의 사운드를 체크하고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른바 스피커를 체크하기 위한 앨범이니까.

Q : 또 2006년에 우리와 했던 인터뷰에서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The Fragile"을 가장 마음에 드는 앨범으로 뽑았습니다만, 이번 작품에 그것을 갱신하는 것은 가능합니까?
A : 언제라도 지금 손에 꼽을 수 있는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거지만, "The Fragile" 앨범을 이길만 한 것은 별로 없다고 마음 속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다. 이 앨범을 만든 것 자체가 매우 특별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계속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지금 들어도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Q : 마찬가지로 이전의 인터뷰에서 "아티스트를 음식으로 여기는 레코드 회사가 없어지는 시대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이번의 프리 다운로드는 그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나요?
A : 아니다. 첫걸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 뭔가 일으킬지 아직은 모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상(理想)은 리스너가 즐기면서 돈을 내며 음악을 사는 것이지만, 무료로 음악을 입수시키는 것은, 오랜 시간, 조잡한 작품을 레코드 회사에서 주었기 때문이다. 리스너는 속았다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강탈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돈을 내 주는 게 신경쓰이는 어떤 수단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스페셜한 패키지라면 리스너의 구매욕을 자아내지 않을까. 오디오 파일이 아니고 물건으로서 남겨둘 테니까. 아날로그 반이 아직 있으니, 수집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인 음악 미디어로 남겨지는 걸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다.

Q : 마지막으로 완전히 다른 질문을 하나만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이전에 손댔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지저스 앤드 메리 체인이 최근 부활을 했습니다만, 어떤 기분인가요?
A : 물론 기쁘다. 나도 그들과 교류가 있고,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라이브는 2~3주 전에 보러 갔었다. 오랜만에 기타인 케빈 쉴즈를 만났다. 멋진 라이브였다. 지저스 앤드 메리 체인과는 당분간 만날 수 없지만, 그들과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들의 라이브도 가능한 한 빨리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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